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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 함께 운동하실까요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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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성령님, 함께 운동하실까요 머리말 성령님, 오늘도 함께 걸으실까요? 목차 제 1 부 걸으라 제 1 장 하나님은 동산을 거니셨다 제 2 장 에녹은 삼백 년을 걸었다 제 3 장 산책은 가장 오래된 기도다 제 4 장 예수님은 걸어서 다니셨다 제 2 부 달리라 제 5 장 몸은 성령님의 전이다 제 6 장 육체의 연단도 유익하다 제 7 장 엘리야는 마차보다 빨리 달렸다 제 3 부 누우라 제 8 장 잠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다 제 9 장 엘리야는 먼저 잤고 그다음에 먹었다 제 10 장 예수님은 배 안에서 주무셨다 제 4 부 숨 쉬라 제 11 장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제 12 장 성령님은 바람이다 제 13 장 마른 뼈에 생기가 들어가다 제 5 부 먹으라 제 14 장 광야의 밥상은 하루치였다 제 15 장 다니엘은 채소와 물을 구했다 제 16 장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제 6 부 일하라 제 17 장 에덴에도 일이 있었다 제 18 장 땀 흘림까지 은혜가 되었다 제 19 장 예수님의 손에는 굳은살이 있었다 제 20 장 브살렐에게 임한 성령님이 있다 제 21 장 손으로 수고하여 나누어 주라 제 7 부 여행하라 제 22 장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제 23 장 광야는 지나가는 길이지 사는 곳이 아니다 제 24 장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다 글을 닫으면서 지은이 판권
머리말 · 본문 미리보기
당신은 오늘 하루 몇 걸음을 걸었습니까? 나는 오랫동안 신앙을 마음의 일로만 여겼습니다. 기도는 무릎으로 하는 것이고, 예배는 자리에 앉아서 드리는 것이고, 믿음은 생각 속에서 자라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몸은 그저 영혼을 담아 두는 그릇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몸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늦게까지 깨어 있었고, 아무렇게나 먹었고, 좀처럼 걷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새벽에 성령님께 여쭈었습니다. “성령님, 요즘 왜 이렇게 기도에 힘이 없을까요?” 그때 마음에 이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먼저 좀 걷자.’ 나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더 기도하라는 말씀을 기대했는데 걷자고 하셨습니다. 더 깊은 말씀을 주실 줄 알았는데 몸을 일으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날부터 나는 새벽에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걸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내 생각 속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내 다리에도 함께하시고, 내 호흡에도 함께하시고, 내 잠자리에도 함께하십니다. 성경은 몸을 하찮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몸을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은 우리 몸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의 전이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성전을 소홀히 관리하는 제사장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몸에 대해서만 너무 쉽게 그렇게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디모데전서 4:8) 이 구절을 오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운동은 필요 없다는 말씀으로 읽습니다. 그러나 원문을 보면 다릅니다. 여기서 ‘연단’은 헬라어 “귐나시아”(gymnasia)입니다. 오늘날 체육관을 뜻하는 ‘gymnasium’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바울은 이 낱말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유익이 있다고 분명히 인정했습니다. 다만 순서를 정해 주었습니다. 몸의 연단은 얼마간 유익하고, 경건은 모든 일에 유익합니다. 버리라는 말씀이 아니라 자리를 알라는 말씀입니다. 이 책은 그 자리를 찾아가는 책입니다. 나는 여기서 운동법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몇 킬로그램을 빼는 방법이나 근육을 만드는 순서를 알려 드릴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 책은 이미 세상에 많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입니다. 걷고, 달리고, 자고, 숨 쉬고, 먹고, 일하고, 길을 떠나는 그 평범한 몸의 일들 속에 성령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영혼만으로 짓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흙과 숨입니다. 몸과 영입니다. 이 둘이 합쳐져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몸을 무시하는 신앙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몸만 챙기는 삶도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둘을 함께 둡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삼서 1:2) 영혼이 잘되는 것과 몸이 강건한 것을 나란히 놓았습니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일곱 부로 되어 있습니다. 걷고, 달리고, 자고, 숨 쉬고, 먹고, 일하고, 길을 떠나는 순서입니다. 모두 하루에 되풀이되는 일입니다. 대단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펴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나신 자리가 대개 그런 자리였습니다. 동산을 거니시던 저녁이 그랬고, 들에서 묵상하던 이삭의 저녁이 그랬고, 떡을 떼시던 엠마오의 저녁이 그랬습니다. 특별한 자리에서만 그분을 찾으면 하루의 대부분이 신앙 밖에 놓입니다. 그러면 주일과 평일이 갈라지고, 예배와 생활이 갈라집니다. 그 갈라진 틈을 메우는 것이 이 책의 목적입니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날마다 걸었습니다. 걸으면서 성령님께 여쭈었고, 여쭈면서 문장을 얻었습니다. 이 책의 대부분은 책상이 아니라 길 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한 장을 읽고 나서 신발을 신으십시오. 그리고 성령님께 말씀드리십시오. “성령님, 오늘도 함께 걸으실까요?” 그분은 반드시 함께 걸으십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걸으시는 분이었습니다. 당신을 억만 번이나 축복합니다.